꽃을 재촉하는 봄비가 내리던 일요일 오전 寒食전에 산소를 돌볼양으로 강변역으로 향했다.차창 밖에 기다림이 무료하여 우산 위로 사뿐히 내려앉는 빗방울을 팽그를 돌리며 털어내는 장난끼 많은 어린 계집아이를 뒤로 하고 복잡한 버스는 都心을 떠났다.
오후들어 날이 개이고 예상보다 빨리 작업이 끝나 귀경길에 들려다 마음이 변했다.
이왕 내려온 것 지난 주왕산 산행에 실패(?) 했으니 이번엔 도립공원 청량산이나 가보자 월요일 출근하는 여동생을 따라 버스정유장으로 이동하였다. 예안 방면의 차량이 청량산 입구까지 운행을 한다는데 정유장에 도착하니 이미 버스가 떠나 버렸다. 불과 3분전에…
다음 차가 오기까지는 한시간여의 여유 시간이 있었다. 발길을 돌려 월영교와 환풍정, 선착장을 돌아 다시 버스 정유소로 이동 청량산으로 떠났다.
퇴계로(내 고향 안동에도 퇴계로가 있다)에는 산수유 노란꽃들이 피고 있었다.
시골 버스는 연세가 높으신분들이 대부분, 차안은 인사를 겸한 구수한 대화의 장이 열리고.
“할매는 어디 가따가 오니껴?”
“야, 아들네 집에 갔다 오니더, 각제 뭔일이 있는동 와보라 캐서 엇저녀 내려 왔다 아무일도 아이래 가 주고 은제 집에 가는 길이시더”
우스운 일이다. 25년전 늘상 듣던 그 말, 써왔던 그 말들이 갑자기 생경스럽다.
시골은 모두가 친구다. 버스 기사나, 승객을 승객은 또한 기사를 속속들이 안다.
성씨는 무엇이며, 뉘집 아들이며, 자식은 몇이며, 살림살이는 또한 어떠하며…
동생에게 들은 얘기다.
근무하는 대학에 한문을 전공한 교수 한분이 예안의 어떤 집에 인사차 들렀다. 인사가 끝나자 어르신이 대뜸 하신다는 말씀이
“이 사람아 자네하고 나하고는 남이 아닐세, 자네 몇대조 할머니께서 우리 집안으로 시집와서 누구누구를 낳고, 또 자네 집안의 고모 누구누구는 우리 집안 누구의 처조카와 결혼하고…” 황당하여 혼났다고 하더란다. 안동이란 원래 그런 곳이다. 촌수를 따지기 좋아하고 그 누구라도 뭔가 끈끈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좋아하고, 그리고 그러기를 바라는….
버스는 태극기와 새마을기, 그리고 불조심 깃발이 날리는 작은 마을을 돌아 마침내 청량산 입구에 도착했다. 월요일 청량산은 붐비지 않아 좋았다. 매표소에 들러 가장 긴코스를 물었다. 내친김에 가능한 많은 봉들을 오르리라, 퇴계가 노래하던 육육봉의 몇분의 일이라도.
개방되어 있는 가장 긴 코스로 행로를 정했다. 산행 출발점 입석 이동 시간 포함 소요 시간은 은 4시간 ~ 5시간이란다. 매표소를 지나 퇴계시비를 앞에서 등산화 끈을 조여매고 입석암을 향하였다. 오르막에다 아스팔트 길이라 다소 지루하다. 어디에서 공사라도 있는가 대형 덤프트럭들이 가쁜숨을 토해내며 옆을 스쳐 지나고 있었다. 영화에서 보면 손짓, 몸짓 하나로(?) 쉽게 차를 얻어 타고 가는 것을 보았는데 나란 융통성이 없는 사람이다. 뙤약볕 길을 30여분을 채 걷기 전에 입석에 도착하였다. 아마도 매표원이 날 늙은이로 본 모양이다. 분명 40분이 족히 걸린다고 했었는데…
혼자의 산행이다.
좀 빠른 속도로 걸어 보자. 호흡이 가빠지고 이마에 땀이 맺히고 발을 들어 옮기기 힘들 때까지 고통(?)을 즐겨 보자. 초행길은 아니다 학창시절, 그리고 이십대 초반의 직장시절 더러 와 보았던 곳이다. 지난 여름 친구들과 앞 강가에서 레프팅을 즐겼던 곳이기도 하고. 응진전으로 까지 한달음에 올랐다. 작은 암자 앞에는 누구의 정성일까 봄꽃들이 제법 아름답게 피어 있었다. 앞 마당은 잘 다듬어진 밭으로 변해 있었고. 그리 늙어 나이 들어 보이지 않은 친구가 담배를 청한다. 필경 산을 즐기러 온 친구가 아닐 것이다. 산과 숲은 지구의 허파다 감히 누가 산에서 담배를 피워 지구를 병들게 한단 말인가? 물론 입 밖으로 발설하지는 못하였다. 몇 걸음을 더 걸어 경일봉을 오를 즈음 천년고찰 청량사가 한눈에 들어 온다. 잠시 산사의 아름다움에 취해 카메라 셔터를 눌러본다. 경일봉 오르는 길이 제법 깔딱 고개이다. 그러나 이미 마음속으로 고통을 각오한 몸 한달음에 경일봉을 오르자 젊은 부부가 어린 아들을 대동하고 반대편에서 올라 오고 있었다. 땀을 딲고 심호흡을 크게 한 후 목례를 하고 어린 아들에게 덕담을 한다.
“어허! 그놈 잘 생겼다. 대단하네, 든든한 아들 두셔서 좋으시겠습니다.”
경일봉에서 철계단을 오르고 나면 順路다. 자소봉으로 가는 길은 까지는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다. 진달래가 피지 않아 아름다운 진달래 터널을 보지 못함이 아쉬울 뿐…
자소봉 계단 아래에서 아낙 두사람이 길을 묻는다.
“입석까지 얼마나 걸릴까요?”
“아마 시간반이면 족할거요” "야! 힘들겠다. 내려가자" 뭐라 거리는 소리를 뒤로하고 자소봉으로 올랐다. 자소봉 정상에는 망원경이 거치 되어 있다. 亂視라 어지러운 눈이지만 사방으로 망원경으르 돌려본다. 멀리 이름을 알 수없는 수많은 산들, 건넌산 火田으로 일군 밭들, 그리고 청량산의 또 다른 연봉들자소봉 정상에는 또 그리 크지 않은 소나무가 한그루가 서 있다.
소나무 아래서 잠시 땀을 닦고 동생이 준비해 준 떡 두쪽과 김밥으로 점심을 때운 후 탁필봉, 연적봉을 올랐다 뒷실 고개에서 하산길로 접어 들었다. 계곡 곳곳에는 낮은 곳으로부터 노란 산수유가 정상을 향해 기어 오르고 있었다.
청량산은 아름다웠다. 그 품에 안긴 천년고찰 청량사도, 몇년전 어느 가을날 친구들과 함께 했던 산사 음악회가 생각 났다. 단풍이 지천으로 핀 계곡의 산사에서 울려 퍼지던 음악 소리는 천상에서 들려오는 夢幻의 音, 귀를 간지리는 다시 들릴 듯하여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유리보전 앞에는 붉은색 연등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무엇을 간구함인지 알기 어려우나 아마도 성스러운 산사에서는 기도는 필시 효험이 있으리라. 범종각을 지나 내려오는 길에 ‘바람소리 들으며’란 아담한 찻집이 있었다. 한잔 향긋한 茶香을 즐기고 싶었으나 애석하게도 월요일은 휴일이었다. 들뜬 목소리로 知人에게 전화를 했으나 산중이라 연결이 어렵다. 아쉬움에 발길을 돌려 하산하다 물레방아가 있는 벤치에서 지친 다리를 쉬고, 다시 퇴계 詩碑에 이르러 차가운 물로 얼굴을 닦고 퇴계의 싯귀를 다시 한번 읽어본다.
讀書如遊山(독서여유산)
글 읽기가 산을 유람함과 같다
讀書人說遊山似(독서인설유산이사)
사람들 말하길 독서가 산유람과
같다지만
今見遊山似讀書(금견유산사독서)
이제보니 산을 유람함이 글 읽기와
같구나
功力盡時元自下(공력진시원자하)
공력을 다했을 땐 원래 스스로
내려오고
淺深得處摠由渠(천신득처총유거)
깊고 얕음 아는 것 모두 저로
말미암네
坐看雲起因知妙(좌간운기인지묘)
앉아서 피어 오르는 구름을 보며 묘리를
알게 되고
行到源頭始覺初(행도원두시각초)
발길은 근원에 이르러 비로서 처음을
깨닫네
絶頂高尋勉公等(절정고심면공등)
높이 절정을 찾아감 그대들에게
기대하며
老衰中輟愧深余(노쇠중철괴심여)
노쇠하여 중도에 그친 나를 깊이 부끄러워 하네.
버스 정유소로 도착하나 또 다시 1시간여의 시간이 남아 푸른 강물에 다리를 담그자 단숨에 한기가 뼈 속으로 스며드는 듯 하다. 기다리기 지루하여 택시를 불러놓고 知人에게 山寺에서 못한 통화를 하고나니 금방 택시가 도착하고, 버스가 자주 오는 마을로 이동, 버스를 타고 고향집으로 돌아왔다.
귀경 후 친구와의 만남에서 碑文과 조각을 내가 아는 친구들의 작품임을 들었다.
서예하는 서암 이장환 친구와, 조각하는 초등동창 김세일이의 작품이라고...
혼자하는 산행이 늘 즐거운 것은 아니다.그러나 고통은 고통대로 즐거움은 즐거움대로 견뎌볼 만한 것은 틀림이 없을 듯 하다.
2005년 4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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