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

지리산 종주산행

안동인 2006. 8. 25. 17:25
금년 여름 휴가는 살아가는 동안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지천명의 나이에 몇 년을 마음에 두고 있던 지리산 종주산행의 감행(?)이 우선 그렇고, 산행 중 스치고 또 만났던 숱한 사람들, 어린이, 청년, 노인, 젊은부부, 연인 등과 산행 출발점인 성삼재의 밤하늘을 수 놓았던 은빛 은하수,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듯한 금빛, 푸른빛 별들, 긴 꼬리를 남기며 한순간 밝은빛으로 타다 사라져 가는 流星들이, 한밤중임에도 한줄기 작은 바람에도 흩어져 날리던 밤 하늘 눈처럼 흰빛 구름들의 아름다움에 혼을 빼앗겨 1박 2일 꽤 긴 산행이 찰라처럼 지나갔다. 고되지도 힘들지도 않게...

 

 8월 1일 오후 5시 40분.

남부터미널에서 친구와 동행하여 버스를 타고 처남이 기다리는 거창에 도착하니 이미 저녁 아홉시에 가까워 있다. 전일 가야산 산행에서 새벽시간에 돌아온 터라 미처 준비물을 다 챙기지 못하였다. 거창에서 준비물을 다시 한번 챙기려 했으나 마중 나온 처남과 늦은 저녁에 소주 한잔을 비우고 나자 작은 읍의 할인점은 이미 문을 닫은 후였다. 버너를 비롯한 몇가지 준비물은 결국 채우지 못하고 간식으로 양갱 몇개, 쵸코렡 몇개, 생수 한 통, 그리고 처남의 차에 실린 버너만을 챙기고 숙소로 돌아오니 이미 시간은 자정에 가까워져 오고 산행지도조차 준비 못한 터라 인터넷에서 산행지도와 산행기를 읽다보니 이미 자정을 넘어서고 있었다. 새벽 2시 30분 처남이 성삼재까지 이동시켜 주기로 하였으니 2시간여 시간이 남아 있다. 잠시 가면상태에 들었다 싶었는데 휴대폰이 요란하게 운다. 시간은 이미 8월 2일 새벽 2시를 알리고 있었다. 고양이 세수를 하고 베낭을 메고 나서자 처남이 금방 숙소 앞에 도착했다. 조식을 위한 김밥을 준비하고 검은 밤을 달려 산행 깃점 성삼재에 달렸다. 한여름 날임에도 청량한 공기의 냄새가 향기롭다. 논에서는 잠도 없는 개구리들은 울어대고...

 

 

 8월 2일 산행 첫날!

성삼재에 도착 새벽 3시 40분.

어둠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산행 준비를 위해 분주하다. 더러는 체조를 하고, 더러는 장비를 점검하고...이동을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은 처남과 기념촬영을 한뒤 처남이 돌아가자 등산화 끈을 고쳐매고 깊은 가벼운 체조와 깊은 심호흡으로 심신을 깨운 뒤 헤드렌턴 빛에 의지하여 한 걸음, 두 걸음 걸어 오르다 노고단 대피소에 이르러 잠시 땀을 식히고 조심스레 걸어 오르자 별들이 하나 둘 사라지는가 어느새 삼라만상이 서서히 잠에서 깨어나는 듯 어슴프레 밝아오고 노고단 갈림길에 이르자 붉은듯 흰빛 雲海에 잠겨있던 검은 山脈들은 밤에서 막 깨어나고 있었다.

 아! 歎聲을 지르다 잠시 눈길을 사방으로 돌리자 부는 바람에 날리는 신비로운 운해속에서 산맥은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산맥과 운해의 경이로운 아름다움에 취해 있다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늘 굳게 닫혀 있던 노고단 계단길 철망문이 열려 있었다. 아! 이런 행운이... 짧은 산행을 위해 더러 노고단에 오른적이 있으나 생태계의 보호와 복원을 위해 늘 닫혀 있던 문이 열리고 아름다운 나무계단을 따라 노고단에 오를 수 있었고 예상치 못하였던 노고단의 日出 相逢 순간은 壯觀이란 말만으로는 표현이 부족한 절정의 아름다움이다. 世上事 그리 잘살지 못한 내게 주어진 過한 福이 두렵기도 하고 장엄하고 경이로운 아름다움에 울컥 알 수 없는 격정으로 가슴이 메었다.

일출을 기다리며 - 노고단에서

일출의 순간 - 노고단

화려한 꽃

 

 경이로운 노고단의 일출을 목도하고 내려오는 길섶에는 이름 모를 꽃들, 芳草위에 내려 앉은 이슬은 이른 아침 태양빛 아래 때로 투명한 빛으로, 더러는 아름다운 무지개빛 방울로 화해 아름다움을 더하고 있었다. 이따금 불어오는 작은 바람에 한 방울, 또 두 방울 영롱한 구슬이 흘러 내리고...숲을 지나는 바람은 작은 꽃들을 흔들고 있었다. 노고단을 내려와 호흡을 진정하고 천왕봉을 향해 걸음을 옯기기 시작했다. 임걸령을 지나 노루목에 이르자 좌측방으로 반야봉을 알리는 이정표를 만나자 동행한 친구가 머뭇거린다. 아마도 장거리 산행이 다소 힘들었던 탓인가? 대부분의 산꾼들이 반야봉을 그냥 지나친다. 그러나 언제 또 다시 반야봉에 오를 것인가? 혼자서 반야봉을 오르기로 했다. 하늘을 덮은 깊은 수목의 터널을 지나고 구불구불 긴 나무계단을 따라 반야봉에 오르자 길에는 여름날의 짧은 잠에서 깨어난 산맥들이 신비로운 운해에 담겨 있고 아스라히 먼곳에서 산행 깃점 성삼재가 시야에 담겨 왔다. 아마 오르지 않았다면 후회해도 크게 후회했을뻔 했다. 산맥을 휘둘러 반야봉 운해를 보고 노루목에서 친구와 합류한 뒤 발길을 재촉하여 화개재, 토끼봉, 삼도봉을 지나 연하천 대피소 이르는 길은 때로 험한 길들이 없지 않았으나 어느 한 장면도 없이 경이로운 아름다움, 자연의 조화에 넋을 빼앗겨 피로할 틈조차 없었던 듯하고 특히나 연하천 산장에서 타는 갈증을 달래 준 샘물의 그 차갑고 단 물맛은 꽤 긴 산행의 피로를 풀어 주었다.연하천 대피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동행한 친구는 연하천의 아름다운 풍광을 누구에게인가 자랑이라도 하는듯 휴대폰 통화에 여념이 없다. 샘(?)이 나서 나 역시도 내 좋아하는 친구에게 들뜬 마음으로 지리산 풍광을 전하기도 하였다. 꽤 오래 연하천에 머물다 산행 첫날의 목적지인 세석으로 향했다. 산행 첫날은 세석에서 잠을 숙식을 계획하고 있었으나 숙소(세석산장) 예약을 못하였던 터라 일찍 도착하면 숙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처남의 말이 생각나서 걸음을 빨리하여 속도가 다소 처지는 친구를 뒤로 하고 단숨에 산장까지 이동하였다.

반야봉 오르는 길

반야봉에서 바라본 운해와 산맥

반야봉 나무계단

반야봉 정상

삼도봉 정상

연하천 산장

산장 앞 목판에 새긴 글

 

 연하천 대피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동행한 친구는 연하천의 아름다운 풍광을 누구에게인가 자랑이라도 하는듯 휴대폰 통화에 여념이 없다. 샘(?)이 나서 나 역시도 내 좋아하는 친구에게 들뜬 마음으로 지리산 풍광을 전하기도 하였다. 꽤 오래 연하천에 머물다 산행 첫날의 목적지인 세석으로 향했다. 산행 첫날은 세석에서 잠을 숙식을 계획하고 있었으나 숙소(세석산장) 예약을 못하였던 터라 일찍 도착하면 숙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처남의 말이 생각나서 걸음을 빨리하여 속도가 다소 처지는 친구를 뒤로 하고 단숨에 산장까지 이동하였다.

그러나 산장은 우선 예약자들의 도착 여부가 확인될 때 까지 기다려야 하고 배정 순서도 선착순이 아니었다. 나이 順, 여성 優先이란다. 일찍 도착한 보람도 없어지고 뒤쳐진 친구에게 미안도 하고...친구가 도착하자 우선 저녁을 해결하기로 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거늘...헬기장에 앉아 지는 석양을 바라보며 라면 두개에 햇반 한개를 내어 놓고 끓이고 잇는 우리들을 보고 측은지심(?)이 있었던가? 늘 남을 생각하고 배려하는 산꾼의 맘이던가? 이웃(?)에서 김치며 햄, 멸치볶음 등 진수성찬(?)의 저녁이 되었다. 저녁 식사가 끝나고 산장의 남은 방을 배정한다는 방송이 들려온다. 나이 順, 여성 優先. 이번 산행은 횡재한 산행이다. 쉰을 넘은 이들에게 우선 바을 배정한단다. 쉰의 나이가 그리 고마웠던 날은 아마도 처음이다. 여의치 않으면 산장 처마밑에서 비박을 하리라 깔아 놇은 깔판과 베낭을 챙겨 방으로 짐을 옮가는데 다행히 긴 장마의 끝이었고 평일이라 저녁 7시가 지나면서 남은 사람들도 숙소 배정을 받을 수 있었다. 베낭과 짐을 숙소에 풀고 산장 밖으로 나오자 맑은 바람에 실려오는 향기로운 꽃냄새, 풀냄새, 하늘을 수 놓은 화려한 별빛에 취해 피로함도 잊은 채 세석평전을 한참 동안이나 서성이다 밤이 제법 깊은 후에야 숙소로 들어 안락한 잠을 이룰 수 있었다.

깊은 능선속에 숨은벽소령 대피소

벽소령 대피소

선비샘으로 가는 길

칠선봉

세석 평전 세석산장 이정표

세석산장 전경

 

쾌적한 잠으로 이끌던 세석 산장

 

 8월 3일 산행 둘째날!

새벽 4시 기상 천왕봉 일출을 보리라 했으나 이미 늦어 버렸다. 

어제 들뜬 마음에 늦어진 잠자리가 이른 새벽의 기상을 잊어버리게 했나 보다.

산장에서 가까운 촛대봉 일출을 보기로 하고 여유롭게 걸음으로 촛대봉에 도착하니 새벽 5시 15분 일출을 보기에 무리가 없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이런! 하늘이 온통 두터운 안개에 덮여 있다. 그러나 산중의 날씨는 하루에도 여러번 변하는 것 혹 안개가 걷히면 일출을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기다리기로 했다. 우리들만이 아닌 많은 사람들이 촛대봉 암반에 더러는 앉고 더러는 일어서 안개가 걷히기만을 기다리는데 걷힐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노고단 일출이 5시 40분경 이었으니 오늘도 5시 40분 까지는 기다려 보자. 오늘 산행은 어제에 비해 여유로우니...그러나 여섯시가 가깝도록 안개는 걷히지 않는다. 촛대봉 일출을 보기는 틀린 모양이다 생각하고 천왕봉으로 이동하기 위해 계곡으로 내려서는 순간 아! 하는 탄성에 고개를  들어보니 짙은 안개 위로 붉은 태양이 빼꼼이 얼굴을 내밀기 시작하고 있었다. 한번 모습을 보인 태양은 두터운 안개속으로 사라졌다 나타났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촛대봉 일출

촛대봉 일출

 

 촛대봉 일출은 노고단 일출과 또 다른 아름다움이었다. 환상의 일출에서 깨어나  장터목으로 향했다. 장터목 산장에 이르자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나는 산꾼들이 있는가 하면 노고단 일출을 마치고 내려온 산꾼들이 아침 준비에 바쁘다. 어제 저녁과 같은 메뉴(라면 2개, 햇반 1개)로 아침은 나누고 제석봉으로 향했다. 제석봉은 지리산 풍경 중 가장 좋아하는 곳이다. 한 여름날 온통 옷을 벗어버린 검은 나신의 朱木, 남색 물이 뚝뚝 떨어져 내리는 듯 푸른 하늘, 그 아래에 녹색 양탄자를 깔고 양탄자 위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작은 야생화며 芳草를 繡 놓고,  아직은 작고 여린 작은 주목들은 푸른 잎으로 죽은 자리에서 싹을 틔우고 있었다. 지난 2월  눈속에서 만났던 제석봉과는 또 다른 아름다움이었다. 가끔씩 뒤돌아다 보면 촛대봉에 걸린 구름이, 아스라히 보이는 주목을 닮은 검은빛 장터목 산장의 풍경이 또한 아름다웠고...

 

촛대봉을 덮은 운해

숲과 바위와 하늘과 구름의 조화

 

  제석봉 하늘과 고사목의아름다움에 취해 있다 마침내 지리의 정상 천왕봉을 향했다. 

하늘은 여즉도 남색물이 떨어질듯 푸르고 때로 바람에 날리는 새털 구름이 곱다. 멀리 산맥들은 흰빛 운무에 빠져 있고...마침내 정상에 오르자 눈 아래  중산리 마을의 빨간 지붕이 보이고 사방을 둘러싼 지리의 긴 산맥과 걸어왔던 길들을 바라보다 중산리로 하산길에 들었다. 남강 발원인 천왕샘 물맛은 연하천 물맛에 비할 바 아니었으나 타는 갈증의 해소에는 탁월한 효과가 있었다.

천왕샘에서 목을 축이고 법계사로 하산하는 길에서 아이를 업은 젊은 아버지의 만났다.

일행은 보이지 않고 걸음걸이가 불안하다. 등에 업은 아이가, 목에 건 보온가방이 하산길에 상당한 장애가 되고 있었다. 위태해 보여 중산리까지 옮겨주겠다고하자 사양을 한다. 아마도 몇 올 남지 않은 흰 머리, 덩치보다도 큰 베낭을 보고내게 짐을 맞긴다는 것이 미안하였던 모양이다. 젊은 아비보다 본인 보다 아이가 위험해 보여 빼아듯 가방을 받아 어깨에 메고 하산길을 재촉했다. 로터리 대피소에 이르러 잠시 잠시 목을 축이며 뒤처진 친구를 기다리는데 짐을 맡긴 젊은 아비가 도착한다. 혹 미안해할까 먼저 말을 걸었다. 혹 못 만나면 중산리 첫번째 식당에 내려 놓고 가리다. 내 전화번호를 적으시고...미안하고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귀중품이 없으니 그러라고 한다. 젊은 아비를 뒤로하고 다시 중산리로 하산길에 들었다. 젊은 아비의 가방을 때로 목에 걸고, 때로 어깨에 메고 내려오는 나를 보고 몇몇 등산객들이 혹 장사꾼이 아닌가 물어와 다소 난감하였다. 

하하! 등 뒤에는 커다란 베낭을, 목에는 보온가방(공교롭게도 맥주회사 가방이었다)을 걸고 내려오는 품이 영락없는 장사꾼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허허 웃을 수 밖에...

 

제석봉1

제석봉2

제석봉3

제석봉4

천왕봉에서 본 중산리

천왕봉 정상

천왕봉에서

남강의 발원 천왕샘

중산리 하산점 표석

 

 중산리에 도착하여 산채 비빔밥 점심을 들며 한참동안 젊은 아버지를 기다렸으나 나타나지 않는다. 할 수 없이 사정을 설명하고 가방을 식당에 맡긴 뒤 진주행 버스를 타고 진주로, 진주에서 부산으로 이동하여 하루를 보내고 귀경길에 올랐다. 연 이틀 35km의 산행이 힘들지 않았던 것은 아마도 지리산의 깊은 모성과 경이로운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요행히 비도 오지 않았고, 三伏之間임에도 산중의 날씨는 담요 한장으로 잠을 이루기 어려울 만큼 서늘한 날이기도 하였고. 하느님이 보우하사였을까?

 

 지리산 종주 산행의 감동은 살아가는 많은 날 동안 깊은 감동으로 가슴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지천명의 첫해에 감행한 산행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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